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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타임즈 -반봉혁 장로님 특집 09-09-03 운영자 2020-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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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도는 나의 교구” ··· “전도는 구원받을 때 까지” 
** 신바람낙도선교회 반봉혁 장로 
 

'낙도'
푸른 바다 위에 둥실둥실 떠 있는 듯, 그저 작은 점하나 찍은 듯, 외로이 바다 한 가운데 붙박이 되어 오랜 세월 파도에 제 살을 깎아 비경을 갖추고 꼭 한번 와 주기를 바라는 외로운 낙도의 손짓. 하지만 어여쁜 색시를 외지인에게 허락지 않으려는 바다의 심술이 얄궂기만 하다.

도시인들에게는 한번쯤 가보고 싶은 여행지쯤으로 여겨지는 낙도를 선교지로 삼아 15개 섬의 머슴을 자처하며 섬기는 이들이 있다. 바로 신바람낙도선교회(회장 반봉혁 장로). 지난 6년간 꾸준히 낙도를 방문해 복음을 전하고 사랑보따리를 가득 선물해 낙도 주민들에게는 언제나 반가운 새신랑이 되고 있다. 이 낙도사역의 중심에는 ‘두부전도왕 · 낙도전도왕’이라고 불리는 반봉혁 장로(순천왕지교회)가 있다.

#‘낙도전도왕’, 반봉혁 장로

반봉혁 장로는 6년 전부터 격주로 여수를 중심으로 흩어져 있는 15개의 섬을 선교지로 삼았다. 그간의 사역으로 15개의 섬 주민 179명 중 121명이 예수를 영접했다. 9개의 섬은 100% 복음화 되었고, 나머지 섬들도 점차 주님을 영접하고 복음화 되어 가고 있다.
 
낙도선교는 섬 주민의 영적 필요와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이다. 처음에는 생필품과 의약품을 더 반겼던 주민들은, 이제는 함께 드리는 예배를 사모하게 되었고, 말씀을 아멘으로 화답하고,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신앙의 동반자가 됐다.

반봉혁 장로가 처음 낙도선교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평소 낚시를 좋아했던 그가 어느 섬에 도착해 할머니에게 물을 요청했다. 빗물을 받아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데 벌레가 둥둥 떠 있는 열악한 환경을 보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낙도는 그야말로 여객선도 오지 않고 문명의 혜택은커녕 식수와 전력공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곳이다. 교회도 거의 없어 그나마 있던 교회도 철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없어진 교회의 터를 바라보는 것이 제일 마음이 아프다는 반 장로.

그가 이렇게 낙도선교에 열정을 쏟고 있는 가장 큰 이유에 대해, “낙도에 살고 계신 어르신들이 대부분 연세가 많아 머지않아 무인도가 될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 집니다”라고 말했다. 주민들의 나이가 거의 80에서 90에 이르고 있기 때문에 더 늦기 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그의 선교적 열정이 낙도선교를 가능하게 하고 있다. 

#낙도에 부는 복음바람 · 사랑바람

지난 8월 28일, 반봉혁 장로와 신바람낙도선교회원들은 선박을 임대해 광도와 수황도를 방문, 남해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넉넉한 사랑을 전해주었다.

6가구 11명이 거주하는 광도는 100% 복음화 되어 집집마다 감리교회 마크가 붙어있고 광도속이 구성됐다. 처음 이곳을 선교할 때만해도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했다. 오물을 뿌리며 장대를 들고 돌아가라던 주민들의 거센 항의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어려움을 마다않고 꾸준히 사랑을 전한 결과, 지금은 가장 반기는 손님이자 한 가족이 된 것이다.
 
방파제도 없는 열악한 광도 선착장. 이곳에서 선교회원들은 거센 파도로 인해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겼다. 그래서일까? 낙도선교를 출발하기 전에 “예수님을 위해 죽으러 갑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는데, 그간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선교를 감당했던 그들의 신앙고백처럼 느껴졌다.

광도의 깎아질 듯한 절벽사이의 가파른 길을 통해 500미터를 올라가야 다다를 수 있는 집들을 방문하기 위해 무거운 가스통과 생필품을 지고 올라가는 것은 큰 고역이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주여, 주여”가 연신 나오는 고통의 순간들이었지만, 그때마다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오르시는 주님의 모습이 떠올라 오르는 내내 눈물로 광도를 적시곤 했다고 한다. 다행히 얼마 전 낙도선교회의 민원제기로 모노레일이 설치돼 주민들의 고통을 덜게 됐다며 좋아했다. 

광도를 떠나 수황도로 가는 뱃길에 여수시 남면 소두라의 파란 지붕이 눈에 띄었다. “저 집이 세 번째로 집수리를 해드린 김인조 할아버지 집입니다.” 낙도선교회는 700여만 원의 비용을 들여 노후한 집을 새롭게 단장해 선물해오고 있다. 지난해 3월과 8월에 수황도의 두 곳에 이어 세 번째로 집수리 사역을 한 것이다. 여건이 허락되는 데로 집수리 사역을 확대해 많은 분들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것이 낙도선교회원들의 바람이다.       

#깊은 눈물을 삼킨 낙도

섬에 방문하면 우선 주민들과 함께 예배를 드린다. 그리곤 일일이 안부를 묻는다. “할머니, 어디 아프신데 없으세요?” “죽겠어, 다 아파.” 어린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는 할머니에게 반 장로는 지긋이 손을 잡고 기도하고는 큰 웃음으로 안아드린다.

정기 여객선이 없다보니 주민들은 반 장로에게 다음에 올 때 물건을 사다 달라고 부탁을 하곤 한다. 그 때 마다 꼭 챙겨서 전해주곤 했다. 지난 해 8월 추도에 살고 있던 이영식 할아버지가 반 장로의 손을 잡고 “다음에 올 땐 꼭 돼지고기 한 근만 사 달라”고 간절히 부탁했었다. 그런데 그만 고혈압으로 돌아가신 것이다. 돼지고기만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는 반 장로는 남겨진 부탁이 있어 더욱 마음이 미어져 그 때부터 생필품 목록에 돼지고기를 추가했다.

수황도 곽후방 할머니. 유독 반봉혁 장로를 반기며 섬을 방문한다고 하면 아침부터 선착장에 나와 기다리고 떠날 때는 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 흔드시던 곽후방 할머니. 반 장로는 할머니의 거칠어진 손을 연신 만지는 사이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할머니 입을 가리고 다니세요. 그냥 다니시면 안돼요.” 곽 할머니는 강한 햇볕으로 인해 입술암에 걸린 것. “사시는 동안 고통 없이 사셔야 하는데..” 목이 메어 말을 잊지 못했다. 집을 나서는 반 장로의 손을 굳게 잡고 “언제 또 오냐”며 깊은 눈물을 흘리시는 곽후방 할머니는 선착장이 보이는 고개 언덕에서 떠나는 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눈물을 훔치고 계셨다.   
     
#선교선이 있었으면...
 
낙도선교를 갈 때마다 빌리는 느린 속도의 작은 어선에서 만나는 큰 파도는 금방이라도 삼킬 듯 위협을 한다. “낙도선교를 위해 30노트의 선교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 사역을 위해 선박면허증까지 땄습니다.” 매번 선박을 빌려 낙도선교를 하고 있는데, 작은 어선으로 거친 파도와 싸워야 하고, 속도가 나지 않아 2-3개 섬을 돌다보면 어둠이 짙어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다. 

반 장로는 단순히 배를 위해 기도했지만 최근 사역이 계속되면서 더 구체적인 선교선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 목욕시설과 세탁기, 주민을 대접할 수 있는 주방시설, 의료실과 물리치료실, 예배실과 친교실을 갖춘 배이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소원이 자장면 한번 드시고 싶다는 것인데, 그 소원을 이루어드리고 싶다는 것이다. 또한 물이 좋지 않아 섬 주민들은 제대로 빨래나 목욕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인데, 제대로 세탁해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한번 단잠을 재워드리는 것이 소원이라고 반 장로는 말한다.

최근에 통일교에서 섬 선교를 위해 흰색 소형선박 50여척 구입해 포교활동을 벌이고 있다. 해군 기지를 연상케 하는 그들의 선착장에는 30여대의 선박들이 정박해 있었고, 20여대는 바다위에서 포교활동에 임하고 있었다. “통일교의 빠른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좋은 선교선을 마련해 주민들을 섬기고 싶다”는 반 장로의 소원이 하루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일생의 목표가 된 ‘전도’

25년 전 어느 날 새벽, 잠에서 깨어 창밖의 교회십자가 불빛을 우연히 바라보게 되었다. 그 불빛에 이끌려 교회에 발을 딛게 되었고, 이후 자신의 삶을 오직 전도와 이웃사랑에 전념해 오고 있다.

전남지역에서 제일 큰 의약도매업 (주)승주의약품 이사로 재직하면서도, 그의 사역의 우선순위는 전도에 있다. 그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국외에도 초빙되어 간증집회를 하고 있는데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해 그간 800여 차례 집회인도를 해왔다. 그의 간증집회에 참석해  보면 전하는 자나 듣는 자 모두 자신도 모르게 눈가의 이슬을 닦기 바쁘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3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나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았다. 어머니는 약국 (순천 승주약국)을 경영했고, 사업수단이 좋아 약국을 크게 번창시키면서 오직 4자녀의 교육에 전념하는 희생의 삶을 살았다고 한다. 1985년 어느 날 지병으로 죽음 가까이 이른 어머니의 생명연장과 예수 믿고 구원받게 하기 위해서 2박 3일의 금식행군을 단행했다. 행군코스는 광양시에서 출발, 순천시를 거쳐 여수시 돌산 평사리에 있는 갈릴리교회까지 걸어가는 일정이었다. 그는 이 2박 3일의 금식행군에서 놀라운 신앙체험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계기로 그의 가슴속에 활화산 같은 뜨거운 신앙의 불꽃이 일게 된 것이다.

어디가 됐든 누구를 만나든 불신자를 만나면 “교회 다니셔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라는 말을 건네며 집요하게 전도에 나서고 있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지금까지 그가 전도한 사람가운데 2500여명이 주님을 영접했고, 그 중 700여명이 목사, 장로를 비롯한 교회 직분자들이 됐다. 

또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데에도 앞장서서 자신의 땅을 헌납해 3번의 성전건축과 그 가운데 2개의 교회를 개척하기도 했는데 전남동지방에서 규모가 큰 교회들로 성장했다. 

#‘두부전도왕’이 되다

반봉혁 장로에게는 ‘두부전도왕’과 ‘낙도전도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그가 전도사역을 나갈 때에는 목에는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어깨에는 두부가 가득한 가방을 걸치고 손에는 성경책이 들려있다.

2003년 1월 어느 날 새벽예배를 위한 교회셔틀차량 운행을 마치고 대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던 중 평소 안면이 있는 사장을 만났는데, 그 분을 전도하는 과정에서 그분이 큰 규모의 두부공장 사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분의 초청을 받아 공장을 방문하였고, 400모나 되는 양의 두부를 선물로 받아 그 두부를 나누어 주는 과정에서 “몸에 좋은 이 두부를 전도하는데 쓰면 참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에 두부공장 지양호 사장은 전도사역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그 때부터 반 장로에게 두부를 무상으로 제공해주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대로 두부는 매우 유익하게 쓰여 졌고, 그러다보니 주위로부터 자연스럽게 ‘두부전도왕’이라는 칭호가 붙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지양호 사장은 매주 200모씩 무상으로 두부를 공급해 주고 있어서, 주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낙도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돕는 데에도 사용되고 있다.

김용태 목사(순천왕지교회)는 반봉혁 장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전도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분입니다. 그리고 정이 많은 분입니다. 낙도사역은 가슴으로 하는 사역입니다. 가슴으로 품지 않으면 어려운 사역인데 늘 보면 넉넉한 품을 가지고 사랑으로 일해 가는 모습에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그리고 자기가 말한 것은 끝까지 책임지는 성품을 가지신 분입니다.”
그가 말하고 끝까지 책임질 약속의 말은 “전도”이다. “죽을 때까지 전도할 겁니다. 전도하다 죽어도 좋습니다.” 반 장로의 굳은 약속의 말이다.   
반봉혁 장로는 오늘날 신앙인들의 모습에 대해 한마디 했다. “사람들은 은혜받기는 좋아하는데 은혜 받은 자의 삶은 살지 않는 것 같아요. 은혜만 사모하고 현상만 쫓는 것 같아요. 예수의 십자가를 붙들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신바람낙도선교회 www.nakdo.net)

광도·수황도 = 정택은 전문기자 yesgo@kmc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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